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의 자화상

이근우 중원대학교 교수 연풍현감 단원 김홍도 이야기(3)

오홍지 기자 | 기사입력 2018/11/23 [09:45]

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의 자화상

이근우 중원대학교 교수 연풍현감 단원 김홍도 이야기(3)

오홍지 기자 | 입력 : 2018/11/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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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우 교수.

김홍도의 풍속화는 인물이 주가 되어 있다. 그는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현장 사람들의 생생하고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사실에 가깝게 작품으로 남겼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은 남기지 않은 듯하다.

일찍이 천재적 재능의 탁월함으로 화원이 되고, 화가로 가장 명예로운 어진동참 화사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쉽게도 그의 얼굴을 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4권 (북한편)에서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화상(畵像)’ 작품은 틀림없는 김홍도의 자화상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이인상, 이인문 작품이 여러 점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인상은 「소나무 아래서」라는 대작 외에 「수옥정(漱玉亭)」, 「구학정(龜鶴亭)」 등 진경산수를 그린 8폭 화첩이 있고, 이인문의 작품은 「여름산수(夏景山水圖)」, 「72세작 가을 산수」 등 빼어난 소품이 다섯 점이나 있다고 했다.

유홍준이 김홍도 자화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한말은 다음과 같다. “김홍도가 쓴 망사의 마름모무늬가 세밀하고 콧수염과 눈썹은 터럭 하나하나를 헤아리듯 그려 넣었다. 그렇게 세필을 구사하고도 옷자락만은 거리낌 없는 필치로 정리하여 개결(介潔)한 품격이 살아나고 터럭만큼의 속기도 없다. 또한 이 작품의 낙관을 보면 ‘김홍도인’과 그의 자(字)인 ‘사능(士能)’ 두 개가 찍혀 있다. 서재 오른쪽 아래에는 ‘송은 이병직 장(藏)’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다.”

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의 모습이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 오는 것일까? 그의 말대로 김홍도의 자화상이 맞는다면 아마도 이것이 유일한 김홍도의 얼굴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 김홍도 자화상은 저작권 관계로 본 지면에서는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김홍도 자화상이 괴산군 연풍면에 소개되는 날을 기대하며, 정확하지는 않지만 참고적으로 본 필자의 김홍도 자화상 모사 그림을 대신 소개한다.

송은 이병직은 1896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내시인 유재현(柳在賢)의 양자로 들어가 궁내부 내시가 되었다.

이병직은 학문에도 열중했고 20세 때인 1915년에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서화연구회에 입학하여 그림과 글씨를 배워 제 제1회 졸업생이 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8차례 입선했다.

이병직의 수집품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가 소장했던 작품 중 김홍도의 「자화상」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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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전하는 김홍도 자화상 얼굴부분 모사초배지에 먹, 31×56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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