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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욱교수] '경영을 생각한다'

제98차 미래경영포럼 정기월례회 강연

충북넷 2017년 07월 20일 목요일
웹출고시간 : 2017.07.20 11:49:00           최종수정 : 2017.09.21 13:11:45

'미래 경영 포럼'
충북 지역 경영자들의 모임이다. 지역 언론인 출신의 민경명 대표가 어언 10년 째 이끌어 오고 있다. 지난 달 홀연히 분당으로 찾아 와 98회 째 조찬 특강을 요청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그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민대표가 지역의 신뢰받는 매체 '충청리뷰'를 경영할 당시 남북화해와 교류의 첫 걸음으로 금강산이 개방되었다. 그런데 촉빠른 민대표가 의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 아름답고 그리운 산하를 온 몸의 박동으로 느끼려는 '금강산 마라톤 대회'를 국내 최초로 개최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주)현대아산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였고 현 SK하이닉스의 전신인 당시 현대반도체(주)의 노사와 임직원들도 대거 참여토록했다. 시민과 문화계 정관계 산학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수려한 금강산 송림을 달리며 작은 통일의 기쁨에 흠뻑 젖었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그가 충북넷이라는 역내 최초의 인터넷 매체를 창립하고 지역 경영자 모임인 '미래 경영포럼'을 만들었다. 나도 적극 참여하고 후원했다. 그게 벌써 십 년 세월이 되었다. 감회가 새로워 좀 색다른 주제의 PPT 특강을 준비했다. 한 시간 동안의 강연 내용을 요약해 여기 싣는다. 그 전날은 비가 왔다. 김영회 전 적십자회장,박영수 전 문화원장, 보리작가 박영대 화백 세 원로를 모시고 민 대표와 저녁을 함께했다. 이튿날 아침 7시 플라자호텔 우암홀에서 개최된 포럼 특강엔 이종석 회장과 충북 테크노파크 김진태 원장을 비롯한  40여명의 경영자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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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경영포럼 제98회 조찬특강
'경영을 생각한다'
(극동대학교 석좌교수 노화욱)


여러분 반갑습니다. 10년을 맞이한 포럼의 강연에 저를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불변의 왕도(王道)가 존재하거나 동일한 성공의 반복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좀 특별한 관점에서 바라본 패러다임의 화두 하나를 주제로 다루어 볼까 합니다. 저 역시 불교 신자가 아닙니다만 여러분께서 오늘 이 강의를 철학으로서의 선불교가 갖는 깨달음의 지혜를 평소의 기업 경영과 연결지어 판단하고 한번쯤 생각해 보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PPT 화면에 띄우는 한시 한 수로 강의를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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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먼저 한 번 읽어 볼까요?

四大元無主/사대원무주
五蘊本來空/오온본래공
將頭臨白刃/장두임백인
恰似斬春風/흡사참춘풍

섬뜩한 내용의 한시입니다. 이것은 죽음을 앞둔 중국의 승조(僧肇)스님이 유언으로 남긴 선시(禪詩)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임종게'라고 하죠. 그 나라에서는 이 분을 사상계의 3대 천재로 꼽더군요. 불교사에 너무나도 유명한 '조론'(肇論)을 저술한 장본인입니다. 산스크리트어의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하므로써 한중일 삼국에 불교사상을 전파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쿠마라시카(구마라즙)의 수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천부적 재능을 탐내던 '요흥'이라는 당시 국왕이 국사(國事)에 쓸 욕심으로 환속하여 벼슬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승조는 '왕이시여, 나의 생 나의 길은 그 곳이 아닙니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분노한 왕이 빌미를 걸어 그를 참수형에 처합니다. 사형 집행 일주일의 말미를 얻어 유유자적 저술을 마무리 한 그는 번득이는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 앞에서 왕과 세상에 깨달음의 시 하나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불과 31세의 나이였습니다. 뜻을 풀어 봅니다.

육신(사대)은 원래 주인이 없으며
정신(오온)은 본래 공(空)한 것이니
이제 번득이는 칼로 내 목을 치겠지만
흡사 봄바람을 자르는 것과 같으리...

고교시절 스승으로 부터 이 시를 처음 대하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일제히 곤두서는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때 승조의 게송에서 얻은 알 수 없는 감성적 충격으로 인해 이후 저는 고승들의 선시와 선불교의 깨달음에 대해 오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강의 첫머리에 이 선시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 강의 내용의 시작과 결론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정말 특별히 성공한 세계적 경영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의식적 내면과 남다른 철학적 요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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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는 스티브 잡스입니다.
이 사진은 꼭 10년 전 6월 29일, 그가 개발한 스마트 폰을 세상에 처음 소개하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지금 봐도 가슴 설레는 역사적인 순간이죠.
어제 제가 신분당선을 타고 강남역으로 가는 지하철 객실칸에는 대략 세어보니 마흔 다섯 분 정도의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지않고 있는 승객이 숫자를 세고 있는 저와 노약자석에 탄 할머니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달의 어느 메스컴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보급률이 80%를 넘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50%가 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잡스가 개발한 스마트폰이 이처럼 세상의 풍속도는 물론 지난 10년 만에 인류의 문명세계를 완전히 바꿔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애플은 오늘 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시가총액 2위인 구글과는 3배의 격차를 벌이며 지난 달 8000억불을 넘어 곧 1조달러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의 기업으로 도약하였죠. 
뿐만 아니라 4차 산업의 신기술과 신문명을 주도하는 이노베이션의 대명사로서 애플이 이룬 성공신화야말로 가히 인류의 문명사와 경제사에 전례없는 탁월한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잡스가 사망하고 난 후 세계 유수의 매스컴이 평가한 업적을 잠시 기억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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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지금 이 순간의 여러분도 의심없이 동의하시나요?
저는 잡스가 일으킨 혁명적 업적 중에서 진정 뜻깊은 비중을 두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앱 스토어'죠. 저는 디지털 지식경제 혁명의 시대에 앱스토어 만큼 세계 만민에게 지식과 기회 나아가 시장의 절대 평등을 구현한 혁명은 일찌기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어느 혁명가와 지도자가 이런 돈과 권력의 벽이 없는 시장을 창조하고 저 네팔 산골이나 실리콘 밸리에 살고있는 동시대 청소년들의 꿈과 창의력을 활짝 펼 수 있는 시대를 열었던가요?

그러면 다시 본론의 주제로 돌아가서 세상 사람들에겐 다소 낯선 영상 한 점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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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별한 모습의 잡스입니다. 어두운 방과 조명등 그 아래에서 찻잔을 오른손에 든 채 가부좌를 틀었습니다. 참선을 통해 명상을 하고 있는 장면이지요. 그는 선불교의 정신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내면의 의식세계와 삶의 가치관은 물론 제품의 디자인과 기업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배경이 있었죠. 자신은 친부모로 부터 세상에 버려진 아이라는 것. 양부모로 부터 알게된 자신의 입양사실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래서 그는 나중에 이를 묻는 기자에게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가 1000%의 부모이며 낳아서 입양시켰던 친부모를 정자와 난자은행에 불과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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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주에 있는 리드대학교입니다. 잡스는 이 학교의 철학과에 진학해서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하고 맙니다. 당시 그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경험과 전기를 맞이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과나무 농장에서의 히피공동체 체험이었죠. 나중에 '애플'이란 상호와 베어 문 사과의 로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죠. 첫 취업 후 그는 7개월 간의 인도여행을 떠납니다.  태생적 특성과 청소년기의 자아형성 과정에서 남다른 환경은 그가 불교라는 철학적 관심과 매력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한것이죠. 그때 잡스는 이  '사과농장'에서 일생의 중요한 어떤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잡스의 정신적 멘토 '오토가와 코분치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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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스님이죠. 일본 조동종 계열의 선불교를 미주에 포교하는 선사였습니다. 나중에 잡스는 아내 로렌 파월과 결혼식을 올릴 때 주례로 모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창업했던 애플에서 해고가 되어 충격을 받았을 때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될 결심으로 이 스님에게 찾아가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합니다. 스님의 만류 후 다시 재기한 회사 '넥스트'를 세웠을 때 코분치노 선사를 정중하게 경영의 어드바이저로 모십니다. 스티브 잡스는 선불교의 교의와 정신을 가르쳐 준 스님을 경영과 인생의 멘토로 삼은 것이죠. 잡스는 제품의 개발과정에 직관과 혁신을 중시하며 모델의 포트폴리오와 디자인을 고집스럽게 단순화 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선의 영향이 고스란이 결과물에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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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배경에서 참선과 명상을 통해 선불교가 지향하는 가치를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실천하려 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명상을 통해 추구하려 했던 것은 결국 최고의 지혜를 통한 깨달음 즉 '반야'의 세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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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적 가치와 경영적 지향의 일치점은 그의 중요한 연설과 인터뷰에서 잘 드러납니다. 평생 그의 기술과 제품개발, 그리고 독특한 기업 경영 방식과 심지어 자신의 검소한 의식주 생활을 비롯한 일상과 마지막 투병 과정에서 보여 준 의료방식의 선택 등 어찌보면 기이할 만큼 고집스러운 면은 이런 배경의 관점에서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 입니다. 명상을 통해 '반야'의 지혜를 얻고 그 길 위에서 추구했던 경영의 세가지 요소를 예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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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란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 이후 남종선의 큰 길을 열었던 육조 혜능은 선불교의 4대 종지(宗旨)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 그리고 직지인심(直指人心)과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그것이죠. 직관은 인간의 내면속에 들어있는 인심(人心)을 바로 보고 가리켜 진리의 실체를 견성(見性)하는 것을 말합니다.그래서 올바른 직관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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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아이폰과 아이팟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의 외관 디자인이 지향하는 특성은 단순미 입니다. 잡스는 심지어 세계 각국에 설치되는 애플 매장의 인테리어 디자인까지도 자신이 만든 단순함의 기본을 철저하게 고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학창시절에 심취했던 히피문화의 전성기 때 미국 미술계의 주류 트렌드였던 '미니멀리즘'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갈수록 복잡다기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절실히 원하는 양면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함'이야말로 인간에게 잠재의식의 바깥으로 발현되고 표출되는 본능적이고도 영원한 가치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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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든 기업이든 조직과 사람은 끊임없이 과거와 싸웁니다. 습관과 고정관념 그리고 이미  지나간 성공위에 안주하거나 반복하려는 사고의 틀이 알고보면 가장 무서운 내부의 적이죠. 파격은 혁신을 말합니다. 사람과 기업과 국가는 혁신하지 않으면 적폐의 해악과 독소로 인해 스스로 아니면 적에게 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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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기에도 명언이죠? 그런데 이 것은 잡스가 한 말이 아닙니다. 현재 살아있는 일본의 어느 유명한 경영자의 발언인데 이 사람 또한 불교에 반하여 잡스처럼 한 때 승려가 되려고 한 적이 있었답니다.바로 이 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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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라고 하죠. 교세라 그룹의 창업자이자 회장입니다. 이 사람은 일본의 메스컴에서 공공연하게 '살아있는 경영의 신(神)'이라 부릅니다. 어떤 신문은 '상불'(商佛)이라 칭하기도 하며 그의 경영방식을 두고 '논어의 경영자'라고도 합니다.우리나라 경영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특히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고 우리나라 식물 육종학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 우장춘 박사의 사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에는 두 가지 신화가 있습니다. 창업하고 60년 가까운 교세라그룹을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고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 성공사례는 파산한 일본항공을 단 3년만에 흑자로 부활시킨 업적입니다. 2010년에 JAL이 경영부실로 파산했습니다. 그러자 금융권이 합의하여 이나모리 회장에게 구원투수로 나서 줄 것을 읍소합니다. 그러자 이 분은 측근 3명 만을 데리고 죽어가는 거대공룡의 회생에 나섭니다. 그리고 13개월 만에 정말 기적적으로 흑자로 전환시킨 후 파견 2년 만에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둡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경영이 완전히 정상화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기업 교세라로 복귀합니다. 그런 직후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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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시퍼런 칼날을 닮은 고승의 선문답 같지 않습니까? 거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저 말뜻을 쉽게 이해하기가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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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잡스의 유명한 이정표로 돌아옵니다. 그는 신제품을 출시하는 프리젠테이션 무대마다 인문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 아래 서 있는 자신과 애플의 사명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정보 혁명의 총아 스마트폰의 진화와 글로벌 영향력을 보면서 그에 비한 우리 기업의 역할과 현주소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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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섭대천(利涉大川)...요즘 제가 재미붙여 매일 아침 독학하는 초서체의 붓글입니다. 큰 내(川)를 건너서 천하의 이로움으로 향한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이 줄어서 경기도 이천의 지명이 되었습니다. 고려의 창업자 왕건이 후백제와 전쟁 중 지금의 이천 복하천에서 홍수를 만나 안전한 물길을 가리켜 준 토호에게 삼한의 통일에 기여한 훈작과 함께 그 곳의 지명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이천 서씨의 중시조가 된 서목의 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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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에는 오늘날 스마트 폰을 비롯한 정보통신 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가능케 하는 핵심 소자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하이닉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울산의 현대 중공업에 입사해서 지상과 해상에서 가장 큰 제품인 선박을 만들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회로의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현대전자로 옮겨갔을 때 그 곳 이천 땅에는 고려와 조선이 자랑하던 세계 최고의 예술품 상감청자를 재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감청자를 만드는 공정과 소재가 우리가 세상을 바꾸려는 메모리 반도체의 제조 공정과 소재와 정말 놀랍게도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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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회사의 쇼룸에 상감청자와 반도체 웨이프를 나란히 전시하고 이 필연의 만남과 의미를 이섭대천의 과거와 미래에 두었습니다. 예술혼의 상감청자와 기술혼의 반도체가 만나는 현장이야 말로 스티브 잡스가 늘 가리키던 인문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이정표 바로 그 지점이었기 때문이죠. 오랜 세월이 흘러 우여곡절의 사연끝에 하이닉스의 미래가 채권은행단의 체제하에 표류하다 경영정상화를 이룬 즈음 저는 우연히 충청북도의 경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마지막의 사명으로 하이닉스의 '주인찾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청주의 M14 공장을 천신만고 끝에 완공케 하고 도청 퇴임 1년 후 당시 SK그룹의 전략투자를 담당하던 박정호 SK텔레콤 현 사장을 만나 하이닉스의 인수를 적극 권유하였습니다. 최태원 회장을 만나서 설득하고 그로부터 그룹내 TF를 구성하여 준비한지 1년 6개월, 채권은행단 관리하에 긴 세월을 표류하던 하이닉스는 마침내 주인찾기에 성공했습니다. 그 때의 감회는 깊고도 컸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전윤철 부총리와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도저히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며 미국의 경쟁사 마이크론에게 매각할 수 밖에 없다던 하이닉스는 오늘날 국내 제조업 중 최고의 영업이익율을 자랑하는 시가총액 2위의 회사로 우뚝 섰습니다. 그 옛날 승조가 임종게를 통해 말하려던 생과 사의 진정한 깨달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반야를 통한 혁신의 경영은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며 집착과 틀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아갈 때를 알고 그칠줄 알아야 하며(知止) 계영배(戒盈杯)의 교훈처럼 내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감히 ‘선(禪)의 경영‘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랜시간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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