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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人] '뚝심'과 '열정'의 40년, 임형택 태강기업 대표

2007년 태강기업 설립해 오거 크레인 등 특장차 제작..관련 특허 ·실용신안 12개
지난달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충북에선 6번째 쾌거

정준규 기자 2018년 03월 21일 수요일
웹출고시간 : 2018.03.21 16:07:00           최종수정 : 2018.03.22 1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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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형택 태강기업 대표/사진 정준규

[충북넷=정준규 기자]태강기업 임형택 대표(56)는 지역 CEO들 사이에서 뚝심의 기능인으로 통한다.

임 대표는 20여년의 현장실무 경륜을 토대로 지난 2007년 태강기업을 설립해 10년 넘게 오거 크레인,카고 크레인,스크랩 그래플 등 차별화된 특장차를 생산해왔다. 특장차 관련 특허와 실용신안이 12개나 될 만큼 기술력에 대한 임 대표의 열정은 정평이 나있다.

기능인으로서 임 대표의 이런 노력들이 인정돼 지난 2015년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인증하는 우수 숙련기술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지난달 선정돼 대한민국 132호 기능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임 대표는 충북에서 탄생한 6번째 기능한국인이 됐다. 우수숙련기술자 지정 2년만에 이룬 쾌거라 뜻이 더 깊었다.

임 대표는 공업고등학교에서 배관용접을 전공했다. "고교 시절 용접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능장의 꿈을 키웠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한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기능한국인 선정은 그래서 임 대표에게 더 특별했다.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감개무량했습니다. 용접을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이 되는데, '비로소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용접 장인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기술명장이라는 개념이 점점 퇴색해 가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대한민국 기술을 선도해야다는 책임감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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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임형택 태강기업 대표가 기능한국인 현판식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정준규

임 대표는 국내 굴지의 특장차 제작회사인 (주)광림에서 20년을 근무했다. 고교졸업후 용접기능공으로 입사해 업무와 학업에 열정을 쏟았다.

광림을 나온 임 대표는 지난 2007년 태강기업을 창업했다. 사업 초기엔 구조물 용접이나 어태치먼트 사업을 주력으로 했다. 창업 당시 임 대표는 완성 특장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 시도한 분야가 오거 크레인(auger crane) 제작이었다.

오거크레인은 전신주를 땅에 심을 때 구멍을 파서 기둥을 들어 세우는 특장차를 말한다.재건축이나 흙막이 공사 시 안전 확보를 위해 땅에 철제 빔을 심는 작업도 오거크레인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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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강기업이 제작 중인 오거 크레인/사진 정준규

'카고 그레인'(cargo crane)이나 '시 크레인'(sea crane) 같은 특장차도 기술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돼 국내외로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개발에 착수한 '시크레인'은 전복양식장에 쓰이는 특장차로 '양망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시 크레인'은 배에 장착돼 전복양식장에 먹이를 뿌리거나 전복을 수확하는 용도로 쓰인다.이밖에도 고철 집게로 사용되는 '스크랩 크래플' 생산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0여억원의 매출을 올린 임 대표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 등을 통해 매년 꾸준한 매출신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을 늘려갈 계획이다.

임 대표는 올해 수출 목표를 100만달러로 잡았다. 지난해 매출액 30만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목표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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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크레인 제작 공정을 설명하고 있는 임 대표/사진 정준규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태강기업은 모 회사로부터 일감을 받아 제작하는 OEM 회사로 출발했다. 제작이 버거울 정도로 한동안은 주문량이 넘쳤다. 사세가 커지면서 지금의 청주시 현도면 사업장으로 공장을 옮겼다. 하지만 사업이 번창해 성공 일로를 달리던 임 대표에게도 걱정이 있었다.

“OEM 물량이 많다는 건 상황에 따라 물량이 줄 수도 있다는 얘기죠. 모 회사가 여하의 이유로 OEM 물량을 줄이게 되면 단시간에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자체 제작 완성차만이 답이었죠. OEM 제품을 만드는 동시에 완성차 제작을 위한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했죠 .”

우려는 현실이 됐다. 모 회사가 갑자기 일감을 줄이면서 매출히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매년 줄던 일감도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대당 수억원이 넘는 선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특장차 제조업 특성상 자금 운용도 만만치 않았다. 탈출구가 없을 것 같던 현실에 빛이 돼 준 게 바로 오거 크레인이었다.

12개나 되는 특장차 관련 특허와 실용신안 기술이 고스란히 차체에 녹아들었다. 어려운 시기,타개책으로 시작한 완성차 제작이었지만, 동시에 임 대표의 오랜 꿈도 실현됐다.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특장차가 국내 업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팔려 나가면서, 회사 매출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완성차를 만들어 저희 메이커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합니다. 틈새시장이긴하지만 구매업체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특장차 시장은 큰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R&D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향후 R&D투자를 통해 아이템을 다변화하고 매출과 성장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회사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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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는 임 대표/사진 정준규
임 대표는 후학양성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산학협력으로 진행되는 일학습병행제사업 등 미래 기술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후학양성을 위해 힘써왔다. 

시스템공학 박사이기도 한 임 대표는 한밭대와 충남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40여년 현장에서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강단에서 펼치기도 했다.

후진양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돕고 싶다는 게 임 대표의 생각이다.

임 대표는 ‘신의’를 가장 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협력기업과 직원들에게도 늘 이 점을 강조한다. "신의는 회사에 대한 약속이이라기 보다 나에 대한 약속"이라고 임 대표는 강조한다.

그래야 회사도 똘똘 뭉칠 수 있다는 게 임 대표의 지론이다. 임 대표의 꿈은 태강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 사회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일이다.

“주변을 챙기지 못하고 너무 일만 하고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종종 들어요. 회사가 좀더 안정 되면 후진양성이나 사회 기여를 위해 더 힘쓸 생각입니다. 돈만 좇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아요. 지인과 주변들을 도우며 소박히 살고 싶은 게 저의 꿈입니다.”

기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임 대표는 40년 넘는 시간을 매진해왔다. 고비를 열정으로 정면돌파하며 마침내 대한민국 대표 기능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기술에 대한 그의 노력과 열정이 또 어떤 역사를 써내려갈지, 다가올 그의 미래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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