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학생이 쓴 방미 소감문 발견

충주고 3년 때 앳된 모습의 사진과 글‘청소년 적십자’ 단지(團誌) 1962년 8,9월호 게재-

임철의 | 기사입력 2007/04/12 [18:52]

반기문 학생이 쓴 방미 소감문 발견

충주고 3년 때 앳된 모습의 사진과 글‘청소년 적십자’ 단지(團誌) 1962년 8,9월호 게재-

임철의 | 입력 : 2007/04/12 [18:52]
#케네디 만나던 그 때 미국 다녀온 뒤 쓴 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충주고 재학 시절 '외국학생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3학년 때인 1962년 미국을 다녀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일화는 반기문 외무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을 때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언론들이 각국에서 모인 방미단 학생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앳된 그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을 실어 더 유명해 졌다.

반기문 학생이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외교관의 꿈을 더욱 키우게 되었고 오늘날 국제 외교계의 큰 인물로 성장했다는 에피소드 역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





# 제목 ‘외국 소년들에게서 느끼고 생각한 일들’

그런데 반기문 학생이 1962년 바로 그 미국 방문을 마치고 자신이 몸담아 활동하던 청소년 적십자(당시 JRC;Junior Red Cross)의 단지(團誌)에 여행 후기를 소감문 형태로 썼던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회장 김영회)는 ‘청소년 적십자’란 제호의 1962년 8,9월호 단지 제9권 제2호 20~21쪽에 실려 있는 ‘외국 소년들에게서 느끼고 생각한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반기문 학생의 글을 찾아 공개했다.

반기문 학생의 글은 앳된 모습의 10대 때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한층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국 방문 일정이 1962년 7월 30일부터 8월 31일까지였던 점에 미루어 이 글은 반기문 학생이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



#10대 후반의 앳된 사진 눈길 끌어

'외국 소년들에게서 느끼고 생각한 일들‘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반기문 학생은 “(미국행에 나서며) 곧 하늘의 별이라도 따고 말 기분이었지만 내 자신 어떻게 앞으로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심스러웠다”고 말해 예의 차분하고 사려 깊은 면모를 그때부터 드러냈다.<아래 ’전문‘ 참조>

그는 미국 체류기간 홈 스테이를 한 듯 “미국 가정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해변가로 소풍을 간다든가...말을 타고 시간을 보낸다든가 무척 재미있는 생활을 보냈다”고 회상하면서 미국적십자 활동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혈액사업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Blood Program이 미국에서 무척 활발한 데 이는 피가 모자라는 사람을 위하여 아낌없이 자기 피를 제공하는 거룩한 일”이라며 “병원에서 수 십명이 피를 빼는 장면이야말로 고귀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 “혈액사업은 거룩한 인간애의 발현”

그는 한 달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만난 미국인들이 보여준 ‘한국에 대한 인식부족’에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도)辭典이 있느냐. 大學이 하나라도 있느냐, 또는 한국에서도 남녀가 데이트를 하느냐는 등 질문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고 썼다.

한편 미국의 앞선 생활수준에 대한 당연한 놀람도 있다.
“미국인들은 자동차와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Drive-in Theater나 Drive-in Restaurant이 많이 눈에 띄었다. Drive이라는 것은 자동차를 몰고 극장이나 식당에 들어가서 자동차 안에서 영화구경을 한다든가 음식을 먹는 아주 듣기에도 기이한 일들이다.”

# 감수성 예민한 10대가 겪은 문명충격 경험도 담아

45년을 격한 오늘날에야 놀랍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감수성 예민한 10대 청소년의 눈으로, 더군다나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동방의 작은 나라 출신 소년이 어느날 세계 초일류 미국인의 생활수준을 직접 눈으로 보며 느꼈을 문명충격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반기문 학생은 문명충격 뿐 아니라 문화충격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놓지 않는 성숙함도 보였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나아가 부모 자식 관계를 떠나 모든 인간을 동일한 인격체로 대하는 그들의 인간관계를 좋게 보면서도 10대 청소년들의 자유방임에 대해서는 “동양도덕에는 없는 소리”라며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좋게 생각되지 않았다”고 자기 주관을 확실히 나타내 보였다.





# 부채춤에 모두들 입 다물지 못하고 넋 잃어

그는 워싱턴에서의 체류기간이 가장 재미있고 보람찼던 것 같다.

“여하튼 자동차와 Television, 냉장고는 미국인의 필수생활 조건인 것 같다. 8월 22일 Washinton D.C.로 갔다. 거기서는 43개국 (반기문 총장은 당시 세계 43개국 117명의 학생 대표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다--기자 주) 대표들이 모였다. 진짜 우리 생활은 워싱턴에서 재미있었다. 인종도 많이 모였지만 성질도 별의 별 인간이 다 모였다. --중략--

한국대표로서 辛양 (반기문 학생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가한 경남여고 신은주 양을 지칭)이 부채춤을 추었는데 인기최고였었다고 자부한다. 어떻게나 감탄들을 했던지 모든 대표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 아! 잊을 수 없는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반기문 학생이 외교관의 꿈을 확실하게 굳히게 된 계기, 그의 미국방문 일정 중 백미(白眉)에 해당할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대표의 긍지를 가지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게 무척 영광스러웠던 날은 Kennedy 대통령과 만난 날이었다. 먼저 백악관의 내실을 구경하고 11시에 만났다.

말이나 사진에서만 보던 Kennedy 대통령! 보기에도 묵직하게 생기신 분이었다.

2, 3분 동안 연설을 하고나서는 여자들 몇몇과 악수를 하고 들어가셨다. 한번 악수를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헛수고만 한 생각을 하면 쓴 웃음을 금치 못하겠다.”

그는 그 때부터 외교관의 꿈을 키워온 끝에 외교관이 상정해 볼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국가 원수 급에 해당하는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 마침내 섬으로써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는 꿈나무들에게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희망’이 되고 있다.





◆ ‘외국소년들에게서 느끼고 생각한 일들’


충주고 3년 潘 基 文

7월 30일 오후 3시 45분 김포국제공항을 경기고의 곽영훈 군, 경기여고의 정영애 양, 경남여고의 신은주 양과 함께 떠났다.

생각하면 곧 하늘의 별이라도 따고 말 기분이었지만 한편 내 자신 어떻게 앞으로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 일행이 맨 먼저 도착한 San Francisco에는 25개국에서 41명이 모였다. 서로 인사교환하기에도 여념이 없었으나 곧 그룹을 나눴는데 우리 반은 캐나다, 칠레, 터키, 파나마, 인디아, 독일, 유고슬로비아, 뉴질랜드, 이탈리아, 한국으로 구성되었다.

San Francisco에서의 생활은 대개 시가지 구경이었다고 해도 좋겠다. 우리들은 세계에서 제일 긴 Golden Gate Bridge라든가 Bay Bridge, Golden Gate Park 등 두루 여러 군데를 보았다. 특히 항상 안개에 쌓여있는 금문교는 아직도 그 웅장한 자태가 눈에 선하다.

San Francisco에서 3일간 머무른 다음 Marin County로 갔다. 나의 가족은 Robert. A. Patterson이라는 중학교장님이었다. 맨 처음에는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좀 난처하였다. 더구나 습관이 젖지 않았기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든가 “Excuse me"라는 말도 여간해 나오지 않았다. 남의 어깨를 치고서도 먼저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난 뒤라야 ”Excuse me"라는 말도 나왔다.

미국 가정생활은 무척 즐거웠다. 해변가로 소풍을 간다든가 또는 말을 타고 시간을 보낸다든가 무척 재미있는 생활이었다. 보통 그러한 일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였다. 월요일 및 화요일은 직접 활동하는 날이다. 내가 택한 것은 국제관계 및 교육부 면이었다.

대개 미국청소년적십자 단원의 활동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Gift Box나 Chest-box 또는 Art Exchange 같은 것이 그들의 주요사업인 것 같았다. 말이 나왔으니 가장 감명 받았던 미국적십자의 사업을 이야기 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는 Blood Program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부터 적십자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사업이 미국에서는 무척 활발하였다. 피가 모자라는 사람을 위하여 아낌없이 자기 피를 제공하는 거룩한 일인 것이다.

한 (적십자)지사의 병원에서 수십명이 자기의 피를 빼고 있는 거룩한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Henry Dunent(앙리 뒤낭-기자 주)이 Solferino 전쟁에서 발휘한 고귀한 인간애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둘째는 Volunteer activity(봉사원의 활동)이다. 정말 Volunteer들에게는 무척 인상을 받았다. 자기의 일도 젖혀놓고서 몇시간 동안 때로는 며칠씩 정신적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것을 보고서 무척 그들에게 감사도 드리고 또 가장 고귀하게 보았다. 미국 내에는 무려 3600개의 지사가 있는데 그 지사마다 약 900명의 Volunteer가 있다니 그 수는 실로 2, 3백만 명에 달할 것이다. 아마 미국적십자 사업 중의 90%가 봉사원의 손에 의해 되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미국인의 가정생활에 관해 말해 보려한다.
제일 좋았던 것은 그 사람들은 항상 명랑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호조건의 덕택이겠지만 그곳에선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이다. 동양에서와 같이 어른은 아이들을 무조건 눌러버리는 그러한 관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모든 사람 사이에 항상 웃음의 꽃이 피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점이 있는 반면 나쁜 점도 없지 아니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좋게는 생각되지 않았음을 솔직히 말해둔다.
미국사회는 미국의 10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많은 자유를 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나칠 정도로 생활을 enjoy하려고 한다든가 또는 부모와 자식사이에 의견이 맞지 아니할 때 부모가 간섭을 안 한다든가 하는 것은 서양 미덕은 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동양도덕에는 없는 소리이다.

Marin County에서의 7일간을 보낸 후에는 Oregon 주의 Portland로 갔다. 거기서는 농장을 경영하는 John Barett씨 댁에서 머물렀다.
미국사람 및 그 외 대표들의 한국 인식부족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전(辭典)이 있느냐 大學이 하나라도 있느냐 또는 남녀 date를 하느냐 하는 등등의 질문은 기가막힐 지경이었다. Portland에서 우연한 기회에 인디안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네들의 독특한 복작에 고유의 춤과 노래는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Portland에서 7일간을 지낸 뒤 Washington 주의 Spokane으로 갔다. 미국 사람들의 생활은 자동차와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 눈치다. 그래서 그런지 Drive-in Theater나 Drive-in Restaurant가 많이 눈에 띈다. Drive라는 것은 자동차를 몰고 극장이나 식당에 들어가서 자동차안에서 영화구경을 한다든가 음식을 먹는 아주 듣기에도 기이한 일들이다.

여하튼 자동차와 Television 냉장고는 미국인의 필수생활조건인 것 같다. 8월 22일 Washington D.C.로 갔다. 거기서는 43개국의 117명의 대표들이 모였다. 진짜 우리의 생활은 Washington에서 재미있었다.
인종도 많이 모였지만 성질도 별의 별 인간이 다 모였다. 우리의 숙소는 가정대신 Wesley Theologial Seminar의 기숙사에서였다.

아침, 점심, 저녁 백 여명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 정말 가족과 같은 흐뭇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한번은 international night(국제친선의 밤을 의미하는 것 같다-기자 주)를 열었다.

한국대표로서는 辛양이 부채춤을 추었는데 인기최고였었다고 자부한다. 어떻게나 감탄들을 했던지 모든 대표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또 郭군이 Vista Song(외국학생미국방문프로그램에 바치는 일종의 獻曲을 경기고 곽영훈 군이 즉석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기자 주)을 지어 각국대표들이 같이 부르게 하여 일약 한국을 빛냈던 것이다. 월화요일에는 토론이 있었는 데 월요일에는 Office of Voluteers, Office of Educational Relations, Safety and Disaster 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2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화요일은 Agriculture, International Law, Religious Life, Education에서 2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Office of Volunteers 와 Office of Educational Relations와 Agriculture와 Internaional Law 였다.

한국대표의 긍지를 가지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게 무척 영광스러웠던 날은 Kennedy 대통령과 만날 날이었다. 먼저 백악관의 내실을 구경하고 11시에 만났다.

말이나 사진에서만 보던 Kennedy 대통령! 보기에도 묵직하게 생기신 분이었다. 2, 3분 동안 연설을 하곤나서는 여자들 몇 몇과 악수를 하고 들어가셨다. 한번 악수를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헛수고만 한 생각을 하면 쓴 웃음을 금치 못하겠다.

저녁 7시부터 Bon Voyage Dinner(작별을 앞둔 ‘잘 가세요’ 만찬을 가진 모양-기자 주)가 있었다. General Grunther의 연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했다. 폐회식을 마치고 난 각국 대표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섭섭한 눈물을 흘렸다. 모두다 형제자매와 같은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우리는 117명의 여러 대표들과 미국적십자관계의 여러분과 친절했던 미국인 친구 및 미국에 adiu(아듀; 우리말로 안녕)를 고했던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