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의 고장 옥천은 예로부터 충신과 효자가 많이 배출돼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에 군(郡)과 문중, 주민들이 춘향제, 추모제 등의 제례식을 치뤄 선인들의 정신을 받들고 있다.
16일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1399~1456) 선생 추모제가 유허비가 있는 고향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열린다.이 행사에는 후손들과 김녕(金寧) 김씨 대종회원, 지역주민들이 참석해 선생의 넋을 기린다.
조선왕조실록에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인 선생은 동네이름을 효자동이라고 할 만큼 어려부터 효심이 지극한 데다 문무(文武)를 모두 갖춘 당대의 명궁이고 전략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조2년(1456년) 단종복위운동에 실패해 세조의 친국(임금이 친히 중죄인은 국문하던 일)에 굴복치 않고, 죽음을 맞이할 때도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17일 탄암공 곽시선생 춘향제가 옥천읍 삼청리(상삼) 탄암선생 유허비 일원에서 지역인사와 선산곽씨문중 들이 선생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춘향제는 제관들이 제물을 바치는 봉진례(奉進禮), 비단을 바치는 전폐례(奠幣禮), 술잔을 바치는 초헌례(初獻禮)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곽 시선생은 조선시대 중기 문신으로 자는 영이(詠而), 호는 탄암(坦菴). 글과 학덕이 뛰어나 당대의 명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학덕을 숭상하는 제를 매년 봄에 열고 있다.
숙종 때 그를 향사하기 위해 향인들이 따로 사우(祠宇, 사당)를 세우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어 21일에는 군서면에 있는 충민사(군서면 하동리 산33-1 소재)에서 순국선열 김순구선생 및 항일투사 25인에 대한 숭고한 뜻을 기리는 ‘충민제’가 거행된다.
김순구 선생은 충북 옥천(沃川)에서 출생. 1910년 국권피탈 때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1919년 3월 23일 3,000명의 군중을 이끌고 강내산(江內山)에서 봉화를 올렸으며 조치원(鳥致院)을 향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 뒤 청주(淸州)·옥천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또한, 1977년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7일 전팽령, 전식, 전유 등 삼위를 봉안하고 있는 ‘목담서원 춘향제’가 동이면 금암리 목담영당에서 목담서원, 옥천전씨 종친회등 유림 및 종친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다.
목담서원은 1765년 유림과 후손들이 송정 전팽령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세워져 운영되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것을 1936년 다시 복원하면서 영당만을 세우고 전팽령, 전식, 전유 선생을 봉안하고 있다.
목담영당안의 영종중 사서공 전식 영정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팽령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왔을때 지은 양신정은 충청북도 기념물 2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임진왜란때 불 타버렸으며 현재의 정자는 1828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삼칸, 옆면 두칸 팔작 목조 기와집으로 현재는 옥천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28일 안내면 도이리 소재 후율당에서 문열공 중봉 조헌 선생을 기리는 ‘춘향제'가 충성심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중순을 전후해서 봉행되고 있다.
후율당은 의병장 조헌 선생이 1588년 용촌리에 지은 서실로 고종1년인 1864년 지금의 자리(안내면 도이리)로 옮겨왔다.
현재의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1977년 대 공사를 거치고 난 다음으로 후율당 안에는 본당과 조헌 선생의 아들 완기의 효자정문이 있다.
현재 후율당은 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돼 문화재로 관리중이다.
/ 이정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