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전 마한의 가장 큰 마을은 단양이었다’

이융조선사문화연구원장 500∼1천호 집터 발견

이정규 | 기사입력 2010/04/13 [17:40]

‘2천년전 마한의 가장 큰 마을은 단양이었다’

이융조선사문화연구원장 500∼1천호 집터 발견

이정규 | 입력 : 2010/04/13 [17:40]

 

▲ 마한의 가장 큰 취락이 단양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수양개유물전시관 모습.     ©충북넷

상고(上古)시대 부족 연맹국가 시절 삼한 중 하나였던 마한에서 가장 큰 취락(마을)이 충북 단양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13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융조 원장은 “2천년전 마한시대에 남한강가 수양개에는 500~1천호의 취락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정도 규모이면 당시의 문화 중심이자 이땅의 서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지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3차례에 걸쳐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 Ⅱ지구를 발굴했다.

이융조원장은 “실제적으로 발굴한 26개의 집터에서 발굴된 유물은 높이 50㎝의 토기들이 한 집당 10개 이상이 나왔으며, 떡시루와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쇠로 만든 작살, 목걸이 등 다량의 유물이 나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융조원장은 또 “수양개Ⅱ지구는 이같은 집터가 적게는 500호 많게는 1천호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집들이 거주하는 곳은 본 적이 없어 마한시대에 가장 큰 마을이었음을 확신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대 도시인 서울과 다름없는 큰 취락이 단양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수양개 Ⅱ지구 마한시대의 취락 발굴로 수양개 유적은 지방문화재인 충북기념물(제101호)에서 국가문화재인 사적(제398호)으로 승격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건립의 단초도 제공했다. 

/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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