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호 칼럼] 서울 가는 길

충북넷 교육창업사업본부장(문화콘텐츠플래너)

충청타임즈 | 기사입력 2010/11/05 [06:21]

[정규호 칼럼] 서울 가는 길

충북넷 교육창업사업본부장(문화콘텐츠플래너)

충청타임즈 | 입력 : 2010/11/05 [06:21]

 

▲ 충북넷 교육창업사업본부장(문화콘텐츠플래너).

 

경북 문경에서 충청도 땅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새재를 넘어야 한다.

'저 고개 넘으면/ 새 세상이 있다는데/ 우리끼리 모여 사는/ 새 세상이 있다는데...' <'새재'부분 발췌>라고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서른 굽이 비탈길. 새재는 영남 선비들이 장원급제의 꿈을 찾아 갔던 희망의 길이며, 봇짐과 등짐을 이고 지고 힘겹게 넘나들던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길이다.

오죽하면 우리 민중들은 '문경새재는 몇 구빈가/ 구비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로 구나.'라는 민요 가사를 노래했을까.

한 서린 길, 새재는 '서울 가는 길'이다.

능수버들이 흐드러진 천안 삼거리는 영남과 호남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울로 향하는 저마다의 꿈의 크기에 대해 가늠하며 꿋꿋한 도전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좌절을 교차한다.

서울 가는 길이 뻥 뚫리고 빨라졌다.

KTX 오송분기역이 11월 1일 공식으로 문을 열면서 서울까지 불과 47분이라는 경이적인 시간의 축소가 이루어졌다.

짚신을 몇 켤레나 닳아 버리고 난 뒤에서 접근할 수 있었던 고단의 서울 길이 불과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사이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며, 미래의 희망임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생명과 태양'으로 상징되는 오송 바이오 밸리와 태양광 산업 중심지를 꿈꾸는 충북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빠른 수도권과의 연결망이 가동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사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속도가 언제나 가는 것이 빠른 만큼 오는 것이 항상 그와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물며 그것이 사람이든 재화든 간에 모든 것이 통째로 흡수해야 하고, 집중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서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KTX로 더욱 치열해진 속도전을 통해 번영을 기대하는 희망찬가의 사이에 소위 '빨대효과(Straw Effect)'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빨대효과'는 컵에 담긴 음료수를 빨대로 빨아먹는 것처럼 어려운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이 모두 대도시와 잘사는 계층으로 빨려 들어가는 역기능 현상을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태양'중심의 미래비전만큼이나 삶에 대한 가치의 높임이 중요하다.

건강하고 긴 수명이 궁극적인 목표인 생명산업은 단순히 생명연장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가치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수준 높은 의료와 복지, 교육 등 문화적 혜택이 풍부한 충북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 청정의 에너지를 만드는 태양광 산업 역시 충북의 고운 심성과 어우러지게 하면서 이를 통한 인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의제가 설정되어야 한다.

'서울'이라는 상징어로 귀착되는 중앙 집중적인 권력구조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마치 거대 공룡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마디로 극단의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셈인데, KTX와 오송역을 갖게 된 충북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단축이라는 기회를 활용할 '공간'이라는 문화적 개념의 적용에 슬기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삼투(渗透)라는 물리적 현상은 농도가 다른 두 액체를 반투막(半透膜)으로 막아 놓았을 때에, 농도가 높은 쪽에서 농도가 낮은 쪽으로 용매가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KTX와 오송역이 '빨대'가 아닌 '삼투(渗透)'가 되도록 해서 서울로 집중된 짙은 농도를 지방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은 충북이 자랑하는 순박한 인심과 맑고 깨끗한 청정 환경,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요소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야 빠르기만 한 '서울 가는 길'이 팔려가는 소처럼 서럽게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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