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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렌다. 달력의 첫장을 넘기는 새로움에 감사한다.
다시 한해를 선물받은 느낌이다.
금년은 신묘년, 토끼가 상징이다.
토끼는 뒷발이 길어 높은 곳을 잘 올라도 내려가는 것은 좀 서툴다.
올 한해 우리 경제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한반도의 정치는 전쟁의 불안이 드리워졌으나, 경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선전한 덕분에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의 오랜 여진(餘震)에서 일단 벗어난 듯하다.
사상 최고치의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가 이를 입증한다.
한햇동안 기업에서 열심히 일한 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물질적으로 여유를 갖게된 것은 전적으로 기업인들의 개척정신과 근로자들이 열심히 흘린 땀 덕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경제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똑똑한 경영자는 많아졌는데 정작 참된 기업가는 나지 않는다'는 탄식이다.
국민 모두가 선진경제로의 전환을 바라는 이 시점에 매우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기업가와 경영자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기업가는 창업을 하고 경영자는 관리를 한다.
기업가는 개척과 모험에 도전하고 경영자는 수성과 안정에 우선한다.
기업가는 보이지 않는 이익을 도모하고 경영자는 가시적 이익에 집착한다.
기업가는 사람을 키우고 경영자는 이윤을 키운다.
기업가는 위기에 사람을 모으고 경영자는 불황에 직원을 자른다.
기업가는 미래를 챙기고 경영자는 회계년도를 챙긴다.
기업가는 철학을 지니고 경영자는 소신을 갖는다.
기업가는 기부를 사회적 책임으로 알고 경영자는 허세와 코스트로 인식한다.
세상에는 좋은 기업이나 경영자도 많지만 의외로 회사를 모리(謀利)의 수단으로 삼는 예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매출등 사세보다도 경영의 총체적 실상과 내면,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통찰해서 판단하고 구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는 비록 대기업은 많으나 존경받을 만한 기업가는 참으로 드물다.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존경받는 기업가'가 나와야 하는데 조선후기의 가포 임상옥(林尙沃)이후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선생 이외에는 진정으로 세인의 존경받는 분을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 부모들과 대학 졸업생들은 무작정 재벌그룹의 대기업을 선호한다.
왜 그런가.
첫째 안정적이고 두째 보수많고 세째 과시욕구때문이다. 이것은 불행한 현상이다.
선진경제로 진입하려면 비록 작더라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런 기업은 대개 진취적이고 정의로우며 개방적이고 청렴하다.
이른바 청부(淸富)를 추구하는, 작아도 이런 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최고의 기회와 명예로 여기는 가치풍토가 확산되어야 한다.
오늘날 자칭 세계일류라 외치는 기업들이 정당한 세금을 포탈해 가면서 삼대, 사대에 걸친 핏줄 세습에 혈안이 되고 정치인과 공무원을 뇌물로 매수하여 사회적 도덕과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켜 오로지 기업의 영향력만 확장시키려는 이기적 죄악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지식과 땀을 훔치고 돈이 되면 길거리 서민의 밥솥까지 빼앗는 후안무치한 대기업들도 우리는 목격했다.
오늘날 한국이 OECD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지성인들로부터 아직도 천민 자본주의 사회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정부는 자유시장경제라해서 기업자본의 무한 횡포를 방임해도 되는가.
이를 비판하고 경제적 약자를 옹호하면 서슴없이 좌경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이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이런 대기업이 사세를 확장하고 고용을 많이 한다고 해서 국민 누구가 진심으로 존경하겠는가.
또 법을 어긴 후에 형벌을 면하는 조건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해서 어떤 국민이 진정으로 고마워 하겠는가.
오히려 시장바닥에서 평생을 콩나물장사로 모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학에 쾌척하는 의로운 할머니의 살아있는 영혼에 우리는 무한감동하게 된다.
새해 아침에 기업 경영자와 직장인들에게 간곡하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건강한 이윤을 추구하되 사회적 정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도덕을 어기지 말라는 당부다.
회사가 어려우면 사회공헌 사업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결코 나쁜 짓을 해서는 않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촌지나 뇌물을 주는 것이 선진사회에선 가장 더럽고 나쁜 짓이다.
그것은 공무정신을 파괴하고 사회정의를 타락시키기 때문에 마약의 제조 유통과 동일한 죄악이다.
그리고 기업의 직장인은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도덕과 양심에 비추어 판단하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나 자신도 반성하고 솔직하게 고백할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나도 오래 전의 직장에서 관행처럼 내려오던 촌지의 조성과 전달을 아무런 생각없이 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양심적인 공무원의 말 한마디에 내 존재와 삶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졌다.
IMF이후 회사에 위기가 왔고 내가 책임자가 되었을 때 마약상처럼 끊기 힘들다던 정기상납의 관행을 과감하게 단절했다.
대신 지역특산의 농산물을 사서 진정한 마음의 선물로 전달토록 했다.
그 과정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후배들을 설득하는게 참 어려웠다.
그 후에야 나는 비로소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공직자들에게 진실해질 수 있었다.
훗날 지역경제에 봉사를 위해 공직사회에 몸을 담았을 때 촌지나 뇌물이 얼마나 더럽고 나쁜 죄악인지 확연하게 알게 되었고, 당시의 결단을 일생일대에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그 당시 양심적 결정이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누구나 새해에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네 가슴을 비추는 신묘년의 저 찬란한 아침해를 어찌 무심코 맞을 수야 있겠는가.
별처럼 반짝이는 이상과 꽃처럼 설레는 열정이 아직 내 삶을 숨쉬게 하고 있을진데 나의 가슴에도 우리 이웃에도 비록 작지만 붉은 태양하나 솟아 오르게 해야하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