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욱 칼럼] 계영배(戒盈杯)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충북넷 | 기사입력 2011/04/22 [14:48]

[노화욱 칼럼] 계영배(戒盈杯)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충북넷 | 입력 : 2011/04/22 [14:48]

 

▲ 말을 하는 그릇, 계영배(左) 계영배 구조의 단면과 원리. 사이펀의 원리와 같다(右).  

 

▲ 노화욱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혼이 담긴 그릇을 보았는가. 이름 하여 계영배(戒盈杯)'라 한다.

신기한 것은 이 술잔에다 칠할 정도의 술을 따르면 그대로 담겨 있으나 가득 따르면 잔 속의 구멍으로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새어 나가 버린다.

전설로만 전해오던 이 잔은 뭐든지 가득 채우려고만 하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계영배의 태생에 담긴 도공의 전설은 극적이다.

광주분원의 관요(官窯)에서 스승에게 배운 기술로 만든 설백자기(雪白磁器)가 왕의 눈에 들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성공을 거두자 그는 교만해진다.

방탕한 세월 끝에 돈과 명예를 다 잃고 죽음의 위기에 다다르자 비로소 깨달은 교훈으로 영혼의 그릇을 만들어 스승에게 바친 인생 반전(反轉)의 명기(名器)요 득의작(得意作)이라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가 상불(商佛) 이라고 칭송했던 임상옥의 가보(家寶)였으며 그는 이 잔을 옆에 두고 탐욕을 경계하며 재물을 모았다 한다.

그러니 넘쳐 사라지지 않는 이윤을 담을 수 있었기에 그는 정작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을 얻은 셈이었다.

최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제안을 좌파경제로 비난한 재벌총수의 오만과는 극명히 대조된다.

이천의 한 도예가가 재현에 성공하여 청자로 만든 계영배를 대하고 세상에는 도공의 예술적 기교만이 아닌 철학적 영혼이 담긴 그릇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후 계영배의 정신은 기업경영과 내 삶에서 오롯한 좌우명이 되었다. 많은 지인들한테 이를 선물해왔다.

특히 IMF 시절에 구조조정의 미명아래 무차별적으로 해고하던 재벌총수나 돈키호테같은 정의감과 공명심으로 권력의 칼을 벼리던 검찰 간부에게도 이 술잔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리키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보다가 몰락하는 장면도 보았다. 
  
나는 주례를 설 때 신혼부부에게 이를 가보로 선물한다.

주례사 듣기 싫어하는 하객을 집중시키는 큰 효과가 있다.

박스 속에서 별난 그릇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니까 주례가 무슨 마술을 하나보다 하고 일제히 연단을 집중한다.

"부부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너무 많이 받으려 말고 칠 할에 만족 하십시오. 집착은 허무를 부릅니다. 사업과 이익을 말합니다. 가득 채우려 말고 칠 할에 만족 하십시오. 과욕은 반드시 실패를 부릅니다."

계영배의 전설 담긴 주례사를 다 듣고 나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주례를 맡으면 인생의 멘토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는 결혼 백일과 결혼기념일이 되면 부부를 초청해 식사하며 행복을 지도한다.

주례의 애프터서비스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주례를 서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릇은 흙으로 빚어 세상의 공간을 안과 밖으로 나눈다.

사람의 마음은 그릇의 안에 담기고 자연의 섭리는 그 바깥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 나눔은 분리된 둘이 아니다. 서로 통해 조화를 이루는 하나다.

욕심과 절제의 균형,이것이 바로 잔 속의 수압 즉 인간의지와, 잔 밖의 기압 즉 자연이치가 상호조화를 이루는 계영배의 인문공학적 원리가 아니겠는가.

무심한 술잔이 인간들에게 말한다. 세상사 무엇이든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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