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컴퓨터 名醫' (주)명정보기술 이명재 대표

'이달의 기능한국인' 선정…국내 데이터 복구 '선구자'
"기술육성 · 기능 엘리트주의가 한국경제 발전 버팀목"

신성우 | 기사입력 2011/07/20 [21:26]

[인물포커스] '컴퓨터 名醫' (주)명정보기술 이명재 대표

'이달의 기능한국인' 선정…국내 데이터 복구 '선구자'
"기술육성 · 기능 엘리트주의가 한국경제 발전 버팀목"

신성우 | 입력 : 2011/07/20 [21:26]

 

▲   (주)명정보기술 이명재 대표이사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7월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으며 컴퓨터 명의로 등극했다.


"향후 10년 안에 강소 기업, 즉 히든 챔피언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주역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변화속에서 기술과 기능 분야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기초 기술 육성과 기능 엘리트주의가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버팀목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주)명정보기술 이명재 대표이사(54).

데이터 복구 분야의 선구자로 세계 수준의 복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 대표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한 7월 '이 달의 기능한국인'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바로 컴퓨터 명의(名醫)로 등극한 것이다.

기능인으로서 강한 자부심과 국내 데이터 복구 분야의 개척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대표의 어린 시절을 보면 현재의 '기능인 이명재'를 짐작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1등을 놓쳐 본적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기 때문에 판·검사 되란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기술, 기능이 뭔지 알 기회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충북 괴산에서 8남매의 차남으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잘해 집안의 자랑이었다.

그러던 중 기능 강국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으로 금오공업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무상교육, 기숙사 제공, 일본 유학' 이라는 특전을 내세운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러나 중학교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의 자존심 강했던 소년은 기숙사 생활과 작업복 차림의 실습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순박한 시골 소년은 결국 현실 도피로 바둑과 문학에 심취했다.
기술, 기능보다 특별한 뭔가를 갈망했던 그는 기술자격증을 따는 것도 거부한채 자격증 없이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기능인으로서의 운명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일본 유학 특전 대신 졸업생 전원 하사관 임용으로 정책이 바뀌며 레이더 정비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최첨단 병기를 정비,수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대대에서 소문 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죠. 공고에서 알게 모르게 배운 이론과 실습들을 현장에서 응용하면서 기능인의 첫 발을 수월하게 내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방황을 했지만 어느새 기능은 제 몸 속에 조금씩 배어 있었나 봅니다"고 이 대표는 당시를 술회했다.



그리고 1983년 컴퓨터 하드디스크 헤드 생산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미국계 다국적 회사 AMK(Applied Magnetics Korea)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됐다. 

당시 AMK는 청주에 7천여명 규모의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었고 이 대표는 이 곳에서 3년간 근무하며 엔지니어들이 주로 취급하는 회사 내부 매뉴얼 관련 자료를 직접 손으로 베껴 쓰며 컴퓨터 하드디스크 관련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러던 중 고장이 나면 바로 일본으로 수리를 보냈던 AMK 회장의 컴퓨터를 그가 고치게 됐고 이후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그는 생산만 전담하던 회사에 '마그네틱 헤드 수리'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제안하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수리 및 기술 영업의 총괄 책임자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또 한번 행운의 여신이 찾아 왔다.

AMK는 인건비가 높아지자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창업이나 사업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이 대표는 이때 회사에서 쌓은 기술과 영업망, 고객을 그대로 갖고 나와 현재의 (주)명정보기술을 창업하게 됐다.

'디지털'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그 때, 데이터 복구시장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분야였고 축적된 노하우도 전무한 상태였다.

이 대표는 데이터 복구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미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그 결과 (주)명정보기술은 국가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큰 활약을 하게 된다.

2010년 링스헬기 추락 사고시 헬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원인 규명에 기여했고, 천안함 침몰 사건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45일간 바다 속 염분에, 그것도 뻘 속에 잠겨 있던 천안함의 하드 디스크를 복원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일이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10일 밤낮을 쉬지 않고 작업을 해 복원을 해 냈습니다"

현재 (주)명정보기술은 연매출 268억원에 수출액 310만불, 종업원 250명이 일하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현재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IDE 및 SCSI 방식의 데이터 저장장치 등 8건의 특허(이명재 대표 발명 5건)를 보유하고 있다.

또 차세대 저장 장치로 각광받고 있는 SSD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 지난 2004년 업계 최초로 상용화 해서 제품을 출시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2006년에 진출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앞선 셈이다.

지난 2001년부터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비롯해 대검찰청, 국가정보원 등 공안기관에 데이터 복구 기술 이전과 보수 교육을 실시하며 수사능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온트랙, 유럽의 이바스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재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이란 등에 데이터 복구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오창과학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이기도 한 이 대표는 오창을 대한민국의 실리콘벨리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긍정적 사고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의지력,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는 이 대표는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장애인 고용 확대와 지역 내 소외 이웃들에게 지속적으로 컴퓨터를 지원해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

데이터 복구 사례집을 출간해 이를 무료 배포하는 등 정보화 지식 전파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는 중소기업 경영인으로서, 그리고 기능인 출신으로서 기능과 기능인의 중요성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 역설한다.

"기능인의 길이 당장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진 않겠지만 앞으로 다양화 될 세상에서 간판보다는 자신만의 기능과 기술이 경쟁력이 될 겁니다. 열정과 노력을 더 하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다면 훌륭한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신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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