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욱 칼럼] 똑부똑게와 멍부멍게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충북넷 | 기사입력 2011/09/14 [16:33]

[노화욱 칼럼] 똑부똑게와 멍부멍게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충북넷 | 입력 : 2011/09/14 [16:33]

 

▲인왕산에서 바라본 '일몰' 이 장엄한 자연이 인간에 주는 교훈은 겸허한 종결의 진리다.
 
 

 

▲ 노화욱 전 충청북도 정무부지사(現 극동대 석좌교수).
내가 일하던 옛 직장에 이런 간부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일년에 절반은 홀로 해외 출장을 다녔다.

부하직원에게는 가끔 자료의 업데이터만 요구 할 뿐 새벽출근이나 야근을 시키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커피를 타거나 자료 카피를 하는 일을 여직원에게 시키지 않고 늘 스스로 했다.

상사가 찾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는 회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한 간부였다.

그러나 일년에 한 두 번씩 대형사고를 쳤다.

오랜 출장끝에 불쑥 나타나 사장에게 최종 수주계약 사인을 하러 내일 모레 런던으로 가자는 식이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가 제시한 계약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그는 임원이 되도 언제나 졸병 같았다.

퇴직 후에도 그는 후배들에게 롤 모델 (Role model)과 오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관료사회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공적상납(功積上納)'이다.

공무원들이 자신이나 민간분야에서 땀 흘려 차곡차곡 쌓은 공을 절묘한 순간에 보쌈하듯 상사에게 상납하는 전통이다.

이른바 '숟가락 얹기'가 아닌 통째로 '밥상 바치기' 식이다.

상사가 그 일의 진행에 단 한번의 관심을 두지 않았어도 언론에는 마치 그가 모든 공을 다 세운 듯 포장된다.

기업에서는 상하간의 공과가 엄격히 구분되고, 보상도 차별하는데 비해 공직사회의 수직적 권위주의는 아직도 철옹성이다.

선출직 보스가 바뀌면 전임자가 이룬 공적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위장되어 상납되고 그 정치적 충성심은 인사(人事)로 보상받는다.

한때 직장에서 유행어가 있었다.

상급자를 네가지 부류로 나눴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똑부)'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똑게)'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멍부)'
'멍청하고 게으른 상사(멍게)'

이 중에서 조직발전에 가장 바람직한 상사가 누구냐 물을때 사람들은 당연 '똑부'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틀린 답이다.

정답은 '똑게'다.

반대로 조직을 망치는 상사도 '멍게'가 아니고 '멍부'라는 것이다.

시중에 떠도는 말이지만 예리한 이치를 담고있다.

지혜없이 설쳐대는 상사의 폐해가 어찌 숫자로 계산되겠는가?

노자도 세상의 지도자를 넷으로 구분했다.

최상의 리더(太上)는 백성들이 그의 존재 정도만 안다(下知有之)고 했다.

그 다음이 친밀하고 자랑스럽게 (親之譽之)여기고 그 다음은 무서워(畏之)하며, 최하가 업신여기는(侮之)지도자라 했다.

나아가 진정 훌륭한 지도자는 다스리지 않는다(長而不宰)라고 했다.

어찌 다스림이 없겠는가, 다만 세상의 도(道)와 순리에 따라 일하고 인위적 가식과 명예를 멀리하면 그 공은 천하가 다 알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치적과 리더십에 대해 세간의 평가는 갈수록 냉혹하다.

경제대통령으로서 최대의 치적이라 자랑하던 아랍 에미리트나 우즈베키스탄 등의 수주 계약은 듣기도 거북한 뒷말이 무성하다.

평창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역할에 국민의 진심어린 박수는 없었다.

급기야 물가폭등이란 시장의 실패에 '팔 비틀기'로 대처하는 복고풍 리더십은 기업의 조소(嘲笑)마저 사고있다.

레임덕이란 없다며 임기 끝까지 부지런하게 일하겠다는 당연한 각오를 두고도 민망한 패러디가 난무한다.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이 아상(我相)과 소통의 부재로 거울도 보지 못하고 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도를 넘은 공명심과 신뢰의 상실이 부른 서글픈 역사의 반복은 선택의 업보인가 혁신의 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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