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계굴 희생자대책위원회(위원장 조병규)가 주최하는 합동위령제에는 김동성 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유족과 주민 등 각계 인사들 150여명이 참석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의 해원을 빌며 그날의 슬픈 역사를 회고하였다.
이날 행사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천도재를 시작으로 합동위령제, 추모식으로 이어졌다.
천도재는 이 지역 최대 사찰인 구인사의 의식 주관으로, 합동위령제는 초헌, 아헌, 종헌, 참석자 분향이라는 전통제례 형식으로, 마지막 추모식은 내빈소개, 유족대표 인사, 추모사, 진혼가 순으로 각각 진행됐다.
곡계굴 사건은 1951년 1.4후퇴가 한창이던 1월 20일 곡계굴에 은거하고 있던 민간인 380여명(유족 측 주장,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여명 이상으로 추산)이 미 공군 폭격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폭격이 있던 날은 음력 12월 13일이었기 때문에 합동위령제는 첫새벽 제사지내던 관습을 쫓아 하루 전날인 음력 12월 12일로 고정되었다.
사건은 대명천지에 일어났지만 반공이데올로기가 강조되던 시절에는 누구도 입에 담지 못하며 지내다가 이념대립이 완화되던 국민의 정부 시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매년 추모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소백산맥 일대에 일명 싹쓸이 작전을 전개하면서 단양에서 경북 예천에 이르는 산야의 75%를 불태웠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영월 지역에서 내려온 피난민들과 지역 주민들이 피난길을 차단당하면서 임시 피난처로 찾아 들어간 곳이 곡계굴이었다.
어이없게도 피난민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남한강 가 자연동굴의 피난처에서 아군의 비행기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 충북넷 민경명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