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의미나 개념을 규정할 수 있는 언어를 독점한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언어는 현실의 권력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늠자이자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는 성향이 크다.
이시종지사가 미국 방문에서 얻었다고 홍보하고 있는 외자유치 성과를 놓고 우려먹기 비판이 사그라 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충북도의 반박이 뒤따르는 등 '언어 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시종 지사가 방미 기간에 맺은 마그넷스쿨과의 외국교육기관 설립 MOU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이고, 세포치료제기업 티슈진과의 MOU는 지난 2006년과 2009년 이어 세 번째 체결이니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세 번씩이나 비슷한 각서를 체결한 것은 정책신뢰의 문제
아무리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내용이 같은 양해각서를 두 세 번씩 다시 맺는 것에 대해 '우려먹기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한 발 더 나가 지방정부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으로 비화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반대로 비판을 받고 있는 충북도와 도지사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많을 것이다.
이시종 지사가 미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13일 귀국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방미 성과와 함께 이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것은 그래서 또한 당연한 대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지사의 언어다.
이 지사는 미국방문 목적을 이렇게 말했다. "이원종 · 정우택 전 지사가 맺은 불씨가 꺼져가 되살리려 다녀온 것이다".
◇ 지지부진한 외자유치의 원인은 이원종 · 정우택 전 지사에게 있다?
은유법은 재치있는 수사학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이원종' '정우택' 이라는 이름이 거명된 데에서 원죄의 혐의를 전임 지사들에게 두려는 의도가 어렵잖게 간파된다. 미국방문이 끝나기도 전에 쏟아지기 시작한 비판의 화살방향을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몇마디 언어로 간단히 돌리는 데에서 정치적 노련함이 풍긴다.
하지만 이시종 지사의 말은 말 그대로 전임자들에 대해 원죄 혐의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한 무책임한 행동을 지금 자신 역시 되풀이하고 있음을 드러낸 셈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 말은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미래에 심어놓은 것이다. 힘 있는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언어의 굴레, 의미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않고는 누구나 포로가 될 뿐이다.
◇ 불씨 회생론이 내포하는 자가당착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자. 외자유치의 불씨가 과거에 정말 타 올랐던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고 생각했다면 최소한 외자유치와 관련, 전임 도지사들의 업적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평가하고 있음을 순진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론이 맞다면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누가 그 불씨를 사그라들게 했는가'. '임기가 3년이나 지나도록 있다가 이제서야 대규모 원행을 해가며 지리멸렬하던 숙제를 해결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전임자들의 무능을 드러내 자신이 이뤘다고 주장하고 싶은 '아직 검증할 수 없는' 결과물을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이 어법은 부메랑이 되어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이와 달리 이제껏 불씨가 한 번이라도 타올랐던 적이 없다고 하는 게 바른 말이라면...이 대목에서 모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정글탐험 프로그램을 떠올려야 그나마 그저 그런 상상력을 소유한 평범한 인간 축에 들 수 있다.
그리고 자각하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몇 시간이고 나무를 마찰시켜 불씨를 얻으려다 실패한 초짜 신입대원들이 부족을 대표하고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위치의 역대 족장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무려 7년 동안이나. 이런 비유는 외자유치 성공타령에 국한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역시 정상은 아니다. 부자연스런 상황은 다른 것도 죄다 이상하게 만든다.
◇ 충북도의 누가 외자유치를 만병의 특효약인 것처럼 노심초사하며 홍보하나
지겹게 되풀이되는 외자유치 성과 홍보와 여기에 소비되는 아까운 언어들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지 뒤늦었지만 깊게 생각해야만 한다.
오송에 외국인 학교가 진짜 진출할지, 티슈진이라는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법인이 연구시설 대신 제조시설을 시간표대로 설립할지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픈 서민에게는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하도 잘했네, 못했네 떠들어대니까 한번쯤, 그것도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외국자본 유치'라는 표현이 갖는 힘에 주체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도 성채처럼 존재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외자유치 필요조건이지만 절대 선도 아니야
자본성격보다 기업의 실재가치가 더 중요할 수 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자유치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약재보다 효과가 영험한 파나시아(panacea)도 아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앞선 자본시장의 개방 시대를 살고 있다. 자본의 국경선이 사라진 지 오래다. 자본의 성격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가 됐다.
그래서 이 보다는 진출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알토란 같은 업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충북도 내부의 특정 파트에 있는 관료들은 외자유치 성과를 전가의 특효약이나 되는 것 마냥 주구장창 우려먹고 있는 인상이다. 누군가?
누가 외자유치 성과가 가져다 줄 실리와 명분의 매력을 2명의 직전 도지사를 비롯해 지금의 이시종 지사에 이르기까지 지치지 않고 세뇌하듯 가르쳤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관료들 보다 몇 단계 영리한 지도자들이 국면전환이나 상황돌파의 계기로 외자유치 성과 홍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많은 도민은 충북도가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조성한 외국인투자지역이 그동안 쏟아 부은 정성과 돈에 비해 별 탐탁치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외국인투자유치 성과를 정치적 약발이 떨어질라치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화수분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시대착오다. 백보 양보해 투자가 실제로 이뤄질지 현 시점에서 너그럽게 판단을 유보해 줘도 그렇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집요함이 다음과 같이 고약한 질문을 제기할 지 모른다. '지역 발전을 위해 모든 걸 잘 해보자는 선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비판이라니. 천부당 만부당하지 않은가?'
◇ 의도가 선하다고 항상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검증할 수 없다고 미래를 현재로 끌고 와 마구 판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은 불순한 의도가 있어 애초부터 성립하기 어렵다.
선의가 늘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기 전에 상식이기 때문이다. 설사 의도(목적)가 선량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명한 정책과 지혜, 힘과 의지를 갖고 끝까지 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칭송받아야 할 덕목이다.
검증할 수 없는 미래라고, 그 때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알 수없는 먼 시간의 영역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꿈'으로 포장해 거리낌 없이 미래를 잡아끌어와 현재의 필요를 위해 봉사(奉仕)시키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조만간 과거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순간 모두가, 그리고 모든 일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돼 있다.
현직 지사의 입을 통해 공개된 조롱 대상자 명단(이원종 · 정우택 전 지사)은 그래서 최종 목록이 아닐 수 있다. 이 예시(豫示)를 무색하게 하고 싶다면 진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 임철의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