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훈칼럼] '국산장비로 연구하는 시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미래정책부장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 기사입력 2015/05/04 [19:18]

[권경훈칼럼] '국산장비로 연구하는 시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미래정책부장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 입력 : 2015/05/04 [19:18]

 

▲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미래정책부장.    
 과학기술은 연구장비의 개발에 기여하며, 연구장비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다. 

 



 

 1894년 음극선 실험 중에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뢴트겐은 X-선으로 사람의 뼈를 촬영할 수 있음을 발견했고, 이후로 X-선이 의학적으로 중요한 장비가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학 외에도 X-선은 물질의 구조분석, 표면분석 등 다양한 연구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연구장비는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에도 적용되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연구장비의 기술을 선도하는 외국의 기업들은 해마다 새로운 모델을 발표하면서 기존 장비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고 장비의 성능향상을 주도하며 막대한 부를 창출한다.

 



 

 현대 과학기술은 첨단연구장비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남보다 앞서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첨단연구장비를 도입한다. 장비의 성능이 향상되고 새로운 분석기술이 발명됨에 따라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과학적 사실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니, 이렇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첨단장비의 사용을 어느 과학자인들 거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연구개발비 수주에 성공한 과학자들은 첨단연구장비를 구입하여 연구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다른 연구그룹이 새로 나온 장비를 써서 좋은 데이터를 얻었다는 발표를 접하면 그 장비를 그대로 구입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의 확대와 더불어 연구장비 구입은 가속화되었다.

 



 

 2005년 이후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으로 구축된 3천만원 이상의 연구시설 장비는 8만 8천점을 넘고 있다. (‘15년3월 ZEUS 등록기준,  http://zeus.go.kr) 이들 장비 구축에 소요된 예산은 10조 8,44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국가사업으로 설치된 연구장비들을 살펴보면 67% 이상이 외산장비이다. 특히 값비싼 첨단장비일수록 국산장비는 찾기 힘들다. 정부에서 연구장비를

 

 

 

 개발하는 사업들로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연구장비를 개발하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 없는 것일까? 휴대폰, 배, 반도체, 자동차 등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엄두도 못내는 제품들을 생산하는 우리가 연구장비 만드는 데에 다른 나라보다 기술이 뒤질 것 같지 않은데, 왜 연구장비에서만은 유독 열세를 면치 못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10여 년 전에 국산장비를 산 적이 있었는데, 장비가 고장이 잦고, 데이터가 제대로 안 나와서 애를 먹었습니다. 그 이후로 국산장비는 다시는 사지 않습니다.”

 

 

 

 “국산장비를 샀는데 장비업체가 망해버리니 AS 도 안되고, 당장 연구성과를 내야 하는데 장비를 못쓰게 되어 난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국내의 장비개발업체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아무리 좋은 장비를 만들면 뭐합니까? 연구자들이 국산장비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외산장비를 구입합니다.”

 



 

 “선진국에 수출하는 우수한 국산장비도 국내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구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에서만 구입하는 형편입니다.”

 



 

 “연구장비를 개발하고도 회사가 당장 장비가 팔리지 않아 수익이 나지 않는 바람에 장비사업을 접은 회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비를 개발하던 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연구장비 시장은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연구장비 산업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는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나설 때다.

 



 

 올해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연구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첨단연구장비 전문 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연구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시작한다.

 



 

 우선 공공기관들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별로 국산장비 상설 체험관을 설치하여 국산장비를 홍보할 계획이다. 연구자들은 상설 체험관에서 국산장비를 직접 써보고 실험해볼 수 있다. 연구자들이 국산장비를 사용해서 논문을 쓰는 연구를 지원한다.

 



 

 또한 국산장비의 성능을 정부 출연연에서 평가하여 인증함으로써 국산장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공공기관에서는 국산장비를 우선적으로 구입토록 유도한다. 국산장비 중에 성능이 부족한 부분들은 출연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성능을 개선함으로써 장비 경쟁력을 확보한다. 이런 활동들이 국산장비를 외산장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국산장비의 발전은 새로운 개념의 장비 개발을 위한 저력이 될 수 있다. 외산장비는 제품에서 정해진 방법대로 장비를 사용하고 결과를 얻어야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산장비로 우리가 새로운 기능 개발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아무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하게 된다. 창의적인 과학기술의 아이디어는 신개념의 장비개발을 통해 확인되고 가치를 인정받는다.

 



 

 X-선의 발명과 같이, 선진국의 많은 노벨상들은 새로운 연구장비의 개발과 연결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장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창의력을 연구장비 개발에 연결하여 새로운 과학기술 영역을 함께 만드는 도전을 시작해보자. 국산장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자.

 



 

 이제는 국산장비로 연구하는 시대다.

 



 



 

/ 권경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미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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