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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설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학술대회가 14일 진천군 화랑관에서 개최됐다. |
이번 학술대회는 최초의 근대수학교과서 ‘算術新書’를 집필한 한국 근대수학교육의 아버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을 위해 가산을 처분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구자로서의 역할 등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선생이 이룬 업적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마련됐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인사말에서 “오늘 학술대회가 선생의 애국정신과 유훈을 계승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선생이 일궜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오롯이 이뤄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에 앞서 이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김용기 전교는 진천향교를 대표해 이상설기념관건립 성금모금 진천군지원협의회에 성금 80만원을 전달했다.
이어 학술대회에서는 ▲한국 근대수학 및 과학교육에 있어서의 이상설의 역할 ▲헤이그특사의 역사적 의미와 이상설의 역할 ▲이상설의 독립운동론과 민족운동 등의 주제 발표가 진행됐다.
그리고 성균관대 박종윤 석좌교수와 이장주 겸임교수, 국가보훈처 이용철 연구원,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이정은 이사, 서울대 철학과 이상돈 강사, 진천향토사연구회 정제우 전문위원이 토론을 펼쳤다.
이상구 교수는 발제에서 “보재가 수학을 공부한 시기는 한국 수학사에서 신구 수학이 양립‧병행한 중첩기였다”며 “한국 역사에서 그의 진정한 ‘선구자’ 역할은 독립운동가이기 전에 한국 근대 수학교육 및 과학교육의 기반을 마련했던 ‘개척자’였던 점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박걸수 교수는 “보재는 한말부터 1910년대까지 광폭의 공간을 무대로 전방위적인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대표적 독립운동가”라며 “그러나 그의 활동은 다른 독립운동가에 가려져 지나치게 저평가 되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이상설이 서전서숙 등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경제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당시 고향 진천에 양부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현시세로 80~100억 규모로 평가되는 약 19.7정보의 토지를 소유했던 점에 비춰 망명자금의 규모와 독립운동가의 군자금을 논의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설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번 100주년 기념 전국학술대회를 계기로 선생에 대한 더욱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학계와 관련기관 등이 함께 추후 학술대회 규모가 국제학술대회로 확대되도록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상설 선생은 1906년 중국 룽징(龍井)에 항일 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설립했고 이듬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밀사 중 3인(이준‧이위종‧이상설)을 대표해 정사로 파견됐다.
이 후 중국과 러시아, 미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1917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순국했다.












